반응형 전체 글195 2차 세계대전 독일 : 독소전쟁의 시작 바르바로사 작전 소련의 피의 독재자 스탈린이 독일은 절대 소련 침공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독소불가침 조약을 철저하게 준수 하였지만 독일군은 소련 침공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전체 군을 3개의 집단군으로 나누고 각각의 집단군에 목표를 설정 하고 빠르게 진격 하기로 계획 하였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 1941년 6월 22일 총 병력 305만에 달하는 독일군이 소련 국경을 넘으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군사작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상징도시 레닌그라드, 경제의 중심지 키예프, 스탈린이 있는 현재 수도 모스크바를 목표로 세 방향으로 진군을 시작한 이 작전은 신성로마제국의 전설적인 황제 프리디히 바르바로사의 이름을 딴 이 작전은 게르만 민족의 생활영역인 레벤스라움을 건설하고 풍부한 지하 자원을 얻.. 2024. 8. 22. 2차 세계대전 독일 : 어리석은 피의 독재자 스탈린 1920년대 중반, 볼셰비키 혁명의 주인공이자 소련의 수장이었던 레닌이 갑자기사망하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스탈린은 중세 농업국가나 마찬가지였던 소련 경제 체제를 혁신 하였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구조 변화 속에 소련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민층이 극빈층으로 몰락해 버렸습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의 부작용으로 지식인과 공산당 내부 간부들 사이에서 마저 스탈린에 대한 반감이 확산 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부 불만이 쌓여 가는 상황에서 스탈린은 내부 단결을 위해 대숙청을 단행 합니다. 스탈린의 대숙청 스탈린은 아래 4가지 이유로 대숙청을 단행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군 장성의 90%, 영관급 지휘관 80% 약 3만 5천명을 희생 되어 소련 군대를 스스로 약화 시켰습니다. .. 2024. 8. 21. 2차 세계대전 독일 : 프랑스의 항복과 영국 본토 항공전 영국 육군 30만명의 덩케르크 탈출이 마무리 되고 나고 독일의 공격이 재개 되어 덩케르크 함락 및 해안 저지대 지역 전부가 독일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프랑스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솜 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독일군의 진격을 필사적으로 막아섰지만 마지막 희망이었던 영국 육군이 모두 후퇴 해 버렸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버틸 여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1940년 6월 14일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함락되면서 전쟁의 사실상 독일이 승리하였으며 새로 프랑스의 총리로 임명괸 ‘필리프 페텡’은 더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다고 판단 콩피에뉴에서 이루어진 독일과 정전협정을 맺습니다. 콩피에뉴 협정(1940.6.22)나치 독일과 프랑스 제3공화국 관계자들에 의해 서명 된 조약으로 같은 해 6월 25일 자정 이후부터 효력이 발.. 2024. 8. 20. 2차 세계대전 독일 : 프랑스군 괴멸과 덩케르크 퇴각 독일의 전술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이 프랑스에 대한 공격 전술로 채택 되고 대규모 기갑 부대를 지휘하는 인물은 구데리안 이었습니다. 구데리안는 이 전까지 보병들을 지원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던 전차를 재해석하여 폴란드 전역에서 전차 위주의 기갑전력 중심 전격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구데리안이 기갑 부대의 선봉을 맡아 1940년 5월 10일 프랑스로 아르덴 숲으로 향하였습니다.프랑스군의 무능함아르덴 숲에 대규모 기갑부대가 진출하면서 여러 전차와 보병이 뒤섞이면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혼란이 왔습니다. 이렇게 혼란을 틈타 프랑스 공군의 폭격이 있다면 모두 전멸 할 수 있는 위기 였지만 프랑스군은 독일 기갑부대의 움직임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큰 전공을 세운 프랑스 가믈랭 장군은 오직.. 2024. 8. 19.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4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