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95 바빌론의 타락과 신바빌로니아 멸망 아시리아의 군국주의 체제가 사라지고 신바빌로니아가 다시 건국하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 졌습니다. 왕들은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자랑하기보다 ‘신들의 사랑을 받은 자’ 라는 칭호를 더욱 좋아했고 신전을 중심의 사회가 구축 되었습니다. 물질적 쾌락주의에 빠진 사회신바빌로니아에는 1000개가 넘는 신전이 존재 하여 수많은 신들을 숭배 하였으며 물질적이고 육체적 향락을 추구 하였습니다. 남성 중심의 쾌락적인 관습이 모든 여성들에게 강요 되었으며 이슈타르 신전에서 성관계가 이루어 졌습니다. 전쟁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은 쾌락에 빠져있는 바빌론을 야훼가 그들의 죄악을 벌하려고 정한 천벌의 장소로 여겼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죽음과 바빌론의 멸망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바빌론을 세계의 중심도시로 만드는데 성공 하.. 2024. 6. 12. 바빌론의 3대 건축물 : 바벨탑, 공중정원, 이슈타르의 문 바빌론은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에 의해 이라크 도시 힐라에서 발굴 되었습니다. 1899년 부터 무려 18년간 작업을 진행 하여 건물 터와 수십만 점의 점토판을 발굴 하였습니다. 그 때 발굴 된 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았던 것이 ‘이슈타르의 문’ 입니다. 콜데바이는 발굴 유적을 분해 하여 500개의 상자에 담아 베를린으로 보냈고 수년에 걸쳐 복원한 ‘이슈타르의 문’이 현재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습니다. 이슈타르의 문이슈타르의 문은 전쟁 신 이슈타르에게 바치는 성 문으로 기원전 575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명령으로 성의 북쪽에 너비 30미터 높이 14미터로 만들어져 거대한 성벽과 연결 되어 있었습니다. 이슈타르의 문은 방어 기능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수호의 의미를 지닌 코발.. 2024. 6. 11. 바빌론 유수와 거대한 도시 건축 신바빌로니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이라고 평가 받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을 예전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명성을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아시리아와 전쟁 중에 아버지로 부터 군사 지휘권을 이어 받았으며 기원전 607년 자국 영토 내에 이집트 세력을 축출하는 임무를 수행 하였습니다. 무역의 중심지 이자 지중해로 나아가는 통로 레반트 지역에 이집트 세력이 차지 하고 있어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에 반드시 해결 해야 하는 문제 였습니다.1차 바빌론 유수기원전 605년 모든 병력을 집중하여 카르케미시를 총공격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 뒤 이집트 군을 뒤쫓아가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후퇴 하게 됩니다. 네부카드네자르2세는 왕위에 올라 권력을 장악 한 후 기원전 599년 다시 .. 2024. 6. 10. 고대 서아시아의 중심도시 바빌론의 시작 고바빌로니아와 신바빌로니아의 연속성찬란했던 수메르 문명이 쇠퇴하고 메소포타미아지역에 여러 세력이 난립 되어 있을 때 그 혼란을 틈타 아모리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 해 옵니다. 이들이 기원전 189년 작은 마을을 이루어 산 것이 바빌론의 시작입니다. 기원전 179년 불체출의 왕 함무라비가 즉위하고부터 대도시로 탈바꿈합니다. 함무라비 왕이 주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 한 후 기원전 1595년까지 고바빌로니아라는 거대한 왕국으로 발전 하게 됩니다. 바빌론은 마르쿠스 신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영적 도시이자 법률과 행정의 체계가 잘 만들어진 도시로서 고바빌로니아 왕국이 멸망한 이후로도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도시로 남게 됩니다. 바빌론이 중심도시로서 지속 되었기 때문에 고바빌로니아 멸망 후 무려 1000년 뒤 .. 2024. 6. 9.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4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