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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려거란전쟁: 3차 침입 개경 사수와 귀주대첩

by 최상민수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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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2차 침입 이후에 현종은 국가를 빠르게 안정화 시키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중앙집권의 기틀을 마련하게 위해 지방 제도를 개혁하여 관리를 파견하고 실질적으로 지방을 토호가 지배 하는 폐혜를 근절 하게 됩니다. 개경의 외성을 축성하고 군사적으로도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장군들을 발굴 및 우대 하여 북방 수비를 맡기게 됩니다.
1차,2차 전쟁을 통해 고려를 굴복 시키지 못한 거란은 다시 1018년 12월 소배압이 총사령관이 되어 대군을 일으켜 고려를 공격 합니다. 이에 고려는 강감찬을 북방 방어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전투를 하는 데 이미 2번 거란과 겪어 본 경험을 살려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삼교천의 전투와 거란의 남하

예전에 양규 장군이 방어 하였던 흥화진에서 첫 전투를 벌인 양국 군대는 거란 소배압이 정면 공격 하지 않고 정예 병사를 흥화진 외곽의 우회 시켰으나 이를 강감찬 장군은 이미 예전 거란의 군대 특성을 파악 하여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고려군은 삼교천에서 매복 하고 있다가  우회 하고 있던 거란 정예병을 모두 물리 치고 기세를 몰아 소배압의 본대와도 전투를 벌여 1차전을 승리 하였습니다. 첫 전투에서 패배한 소배압은 지난 2차 침입 때 그렇게 하였듯이 고려군의 수비 병력을 모두 그대로 둔 채 개경으로 진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고려군도 지난 전쟁과는 달리 2차 3차 방어선을 만들어 두어서 거란의 개경 진격을 막으려 하였으나 소배압은 군사적인 피해을 감수 하면서 2차, 3차 방어선을 뚫고 남하 하였습니다.

추격전과 현종의 결단

3차 방어선까지 뚫고 개경으로 남하 하는 것까지 예상 하지 못하였던 강감찬 장군은 휘하 장수인 김종현 장군에게 정예 기병 1만명을 주어 거란군을 쫓아 개경 방어을 명령 하였습니다.  현종은 적이 개경까지 다가오자 이번에는 피난가지 않고 맞서 싸울 것을 결심하고 개경 주변의 주민을 모두 성으로 들어오게 하여 방어를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거란군은 유목민족 특유의 기동성을 활용하여 강행군을 하여 개경에 도착을 하긴 하였으나 고려의 강력한 방어선을 뚫어내느라 병력 손실이 많았으며 2차 침입 했을 때와는 달리 개경 외성이 축성 되어 있어서 공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개경의 일부 부대가 거란군을 급습하여 큰 피해를 입었으며 개경 외성 공략에 어려움을 느낀 소배압은 후퇴를 결정 하게 되었습니다. 현종이 이번에도 피난을 갔다면 개경이 다시 함락 되어 거란군에게 음식과 휴식을 주었을 텐데 강력하게 저항하자 쉬지 못하고 다시 북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귀주대첩 앞 뒤에서 협공하다

귀국을 위한 행군하면서 현지 식량 조달을 하고 김종현 장군의 1만 기병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내려올 때와 다른 내륙쪽 길을 선택해 북상 하던 소배압은 거란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거점인 귀주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에 시기를 맞추어 흥화진에 있던 강감찬 장군의 고려군 본대가 나타나 거란군의 앞길을 막아 세우는데 김종현 장군의 1만 기병은 거란 군을 따라 잡지는 못하였지만 지속적으로 탐색 정찰을 통해 거란 군대의 동향을 파악하여 강감찬 장군에게 연락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사히 거란으로 돌아가기 위한 필사의 전투 준비를 거란군이 마치고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과 전투를 시작하자 김종현 장군의 정예 기병 1만명이 귀주에 도착을 하여 거란군 뒤 언덕에 진을 치고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리한 행군으로 지쳐 있던 거란군은 협공을 받자 전투를 포기 하고 도주를 시작 하였고 고려군은 이 틈을 타 거란군을 크게 물리쳤으니 이것이 우라나라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입니다

고려의 승리가 동아시아 평화를 가져오다

귀주대첩 이후 거란은 국가적으로 큰 피해를 입어 중국 대륙으로 진출 하는 전쟁을 더이상 일으키지 못하고 고려를 두려워 하였으며 송나라는 고려가 본인들은 막지 못한 거란을 군사적으로 승리하니 고려를 외교적으로 동등한 국가로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가 무역에서도 고려의 이익이 곧 송나라의 이익이라 판단하여 고려에 막대한 물역 이익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침략 전쟁이 끝나고 요나라, 송나라, 고려 3국이 동등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어 전쟁 없이 평화가 찾아와 내부적으로 경제적인 번영을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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