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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려여진정벌 : 동북 9성과 평화협정

by 최상민수 202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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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에게 크게 패배한 윤관은 숙종에 여진을 상대 하기 많은 대비가 필요 하다 보고 하였고 이를 숙종이 받아 들여 별무반을 새롭게 조직을 하게 됩니다.
기병으로 이루어진 신기군, 보병으로 이루어진 신보군, 승려로 이루어진 항마군 이렇게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 별무반은 오직 여진족과의 전투를 위해 강한 군사 훈련을 진행 하게 됩니다. 별무반은 개인적인 능력을 우선시 하였기에 군사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신분의 벽까지 깨뜨려 개방을 하였기에 진정한 고려 최고의 정예 군대로 변모 하였습니다.

숙종의 별세와 예종의 결심

충분한 군사 준비를 끝에 여진 정벌을 하기 전 숙종의 갑작스럽게 사망 하고 뒤를 이어 예종의 즉위 하게 되어 정벌은 중단 됩니다. 왕위가 바뀌고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큰 전쟁이 나기 원하지 않았던 예종은 여진을 공격하기를 포기 하게 됩니다. 외교 사절을 통해 평화적인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진의 고려 국경을 지속적으로 침범 하고 대규모 여진 부족 병력이 모이고 있다는 정보 보고가 이어져 예종은 전쟁을 결심 하게 됩니다

동북 9성을 건설 하다

17만명이나 되는 병력이 동원 된 여진 정벌에는 신속하게 적을 섬멸하고 방어 기지를 건설 하는 것이 주요 목적 이었습니다. 여진족과 고려의 화합을 위한 연회를 가장 하여 족장들을 모아 모두 제거 하고 135개 부족을 한꺼번에 공격하여 각개격파를 하였습니다. 여진족 부족이 차지 하고 있던 주요 길목에 9개 방어기지를 건설하고 주민을 이주 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동북 9성입니다. 여진족이 고려 내지로 들어오는 입구에 강력한 방어 기지를 건설 하여 상대의 공격 의지를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여진족의 끊임 없는 공격

고려의 정예부대인 별무반의 기습공격은 큰 성공을 거두고 계획대로 9곳의 방어기지까지 완성 되었지만 여진족은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여진족 입장에서 부족을 통합 하여 거란족을 물리치고 중국 내륙으로 진출 하기 위해서는 후방에 위치한 고려의 기세를 꺾어야 했기에 포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북 9성의 각각 샛길을 활용하여 기습공격을 반복하여 고려군이 쉬지 못하고 계속 전투를 치르게 하다가 갑자기 대군을 이끌고 와서 성을 포위하여 공성전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척준경의 횔약과 평화협정

여진과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윤관 장군이었지만 개별 전투 최전선에서 엄청난 개인적 무력으로 여진족을 무찌른 장군은 척준경이었습니다. 지방관리의 아들이었던 그는 여진과의 첫 전투 부터 홀로 나서서 여진족의 공격을 막았으며 동북 9성을 위한 공격에서도 끝까지 함락 되지 않던 영주성을 홀로 성벽에 올라 함락시키도 하였습니다. 동북 9성의 방어전에서도 윤관 장군을 적진에서 구해 내고 적의 공격 부대를 섬멸 하여 여진족의 공격에 방어기지가 끝까지 함락 되지 않았습니다.
여진족 입장에서 너무 많은 병력을 소모 하여 추후 중국 내륙으로 진출 하는 것에 지장이 될 것이 우려 되었으며 고려 입장에도 동북 9성 방어를 겨우 겨우 해내고 있는 상  
황이었기에 결국 양국이 전투를 중지 하기로 합의 하였습니다. 양 국의 합의 사항으로 동북 9성은 다시 여진에게 내어 주는 대신 천리장성 이남으로는 여진족은 진출하지 않는다는 평화 협정이 맺어져서 고려와 여진은 전쟁을 멈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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