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서 군대를 정비를 하고 본격적으로 오스트리아군과의 전투를 위해 나폴레옹군은 롬바디아 지역으로 출병 합니다. 오스트리아군 지휘하던 아르젠토 장군은 불리한 전황을 파악하고 재빠른 후퇴를 선택하고 요새 지역으로 군대를 재배치 합니다. 후퇴하는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하면서 진군하던 나폴레옹은 요충지인 로디 다리 전투를 승리를 끌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입성하게 됩니다.
재정적, 문화적 약탈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치고 대표적으로 부유한 도시 밀라노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경제적 약탈하여 약 250억이라는 엄청난 이익을 얻습니다. 또한 유명한 예술품을 프랑스로 옮기는데 전문적인 학자까지 동원하게 됩니다. 여러 전문가 중에 나폴레옹이 약탈한 예술품들을 분류 하던 학자가 드농이었고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그의 이름은 딴 드농관이 생길 정도로 많은 예술품 수탈이 있었습니다. 밀라노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를 심하게 약탈 당하던 이탈리아 북부 시민들은 이에 분노 하여 민중 봉기를 일으켰지만 대포를 앞세운 나폴레옹에게 쉽게 진압 됩니다.
오스트리아군의 반격
후퇴만 거듭하던 오스트리아군은 지휘관을 뷔름저가 임명 되어 4만 7천의 병력을 이끌고 반격을 시작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군에 둘러싸여 롬바르디아의 만토바 요새에 고립 된 군대를 구하고 나폴레옹군을 물리치기 위해 뷔름저 장군이 출진 합니다. 산악 지역을 통해 만토바 요새로 접근 하는 뷔름저의 구원 부대를 나폴레옹은 산을 넘어 그 뒤로 쫓아가는 엄청난 기동을 펼치고 뷔름저의 군대는 구원은 커녕 쫓기듯이 만토바 요새로 들어가서 오히려 더 많은 군대가 요새 안에 갖혀 버리고 맙니다.
라인강 전투 패배로 인한 위기
만토바 요새에서 승리를 잡은 나폴레옹은 이 기세를 몰아서 오스트리아 수도 빈으로 진격 하려고 총재 정부에게 더 많은 병사와 무기를 지원 요청을 하였으나 거절 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더 중요한 라인강 전투가 치열하게 되고 있어 나폴레옹에게 보낼 지원 여력이 없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프랑스와 나폴레옹에게는 불행하게도 라인강 전투에서 2개의 군단이 오스트리아 군대에 크게 패배 하여 전멸 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라인강의 대승을 이룬 이후에 만토바 요새에 갇혀 있는 자국 군대를 구하고 나폴레옹 군을 격파를 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 하였습니다.
대역전과 캄포포르미오 조약 체결
나폴레옹은 대군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 절망하여 큰 패배를 맞기도 하였지만 롬바르디아 공략을 할 때 주로 사용하던 엄청난 기동과 각개 격파 전술을 사용하여 결국은 오스트리아 군대를 모두 섬멸 하였습니다. 2배가 넘는 병력차이를 뛰어넘는 대역전을 이룬 나폴레옹은 드디어 오스트리아 수도 빈으로 진군을 시작 하였고 오스트리아는 어쩔 수 없이 휴전제의를 하고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체결 합니다. 1797년 10월 17일 맺어지는 캄포포르미오조약의 내용은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에게 롬바르디아를 양도 한다 그 대신 베네치아를 넘겨 받는다" 였습니다.
라인강 전선 대패를 넘어 오스트리아로 부터 유리한 휴전까지 이끌어 낸 나폴레옹은 이 때의 기분을 아래와 같은 말로 표현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이 내 밑으로 지나가는 걸 보았다. 마치 날개를 타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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