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원정은 유럽의 기독교 세력이 1096년부터 1291년까지 여러 차례로 진행된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을 이슬람 세력으로 부터 탈환하려는 시도 입니다.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을 거쳐 비잔틴 제국의 영토 였으며 로마 시대 때 부터 성지 순례가 시작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쇠퇴
비잔틴 제국은 중세 동유럽과 지중해 지역에 위치한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 또는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으로도 알려진 국가였습니다. 이 제국은 로마 제국의 동부 부분이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에도 존속한 국가로, 로마 제국의 잔해에서 발전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중반까지 약 1,100년에 걸쳐 존속했으며, 이 기간 동안 동로마 제국이나 비잔틴 제국으로 불리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크게 로마 제국의 기존 영토인 로마와 그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그 통치자들은 로마 제국의 전통을 유지하고 로마 제국의 유산을 계승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본토는 작아지고, 국력이 약화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이슬람 세력이 7세기 초 부터 이슬람 군대가 아랍 반도에서 시작해 확장을 거듭하며 중동 지역을 정복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슬람 군대는 7세기 말과 8세기 초반에 비잔틴 제국의 소아시아 지역을 침략하여 많은 도시와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이로 인해 비잔틴 제국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소아시아의 영토와 영향력을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기게 되고 11세기 부터 예루살렘 내 교회는 파괴 되고 기독교 인들의 성지 순례는 거부 당했습니다.
교황의 정치적인 욕심
비잔틴 제국은 소아시아 영토 회복을 목적으로 교황에게 예루살렘 수복을 위한 군사적인 요청을 하였을 때 당시 교황인 우르바누스 2세는 이 것을 자신의 유럽 전체 영향력을 키우는데 활용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1095년 11월,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프랑스의 클레르몽 대성당에서 열린 크레르몽 공의회(Council of Clermont)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이교도를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표현하며 적대시하고 군대을 조직하여 예루살렘을 탈환하라고 호소하였습니다.
불안한 삶의 탈출구
중세 유럽인들은 불안산 삶 속에서 종교적으로 자신의 죄를 씻어햐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런 사회적 풍조 속에 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도 막강하였으며 자연 자해와 전염병까지 종교에 의지 하며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교황이 명하는 성지 탈환은 자신의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좋은 명분이 였습니다. 더불어 기사들과 영주들은 경쟁 세력과 항상 전쟁을 치루면서 살았기 때문에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종교적인 성지이자 세계 무역의 중심지 중동으로 원정을 떠나는 것은 부채를 없애고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중세 십자군 원정이 발생하게 된 여러 원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시간에는 1차 십자군 원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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