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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2차 세계대전 독일 : 프랑스군 괴멸과 덩케르크 퇴각

by 최상민수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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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전술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이 프랑스에 대한 공격 전술로 채택 되고 대규모 기갑 부대를 지휘하는 인물은 구데리안 이었습니다. 구데리안는 이 전까지 보병들을 지원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던 전차를 재해석하여 폴란드 전역에서 전차 위주의 기갑전력 중심 전격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구데리안이 기갑 부대의 선봉을 맡아 1940년 5월 10일 프랑스로 아르덴 숲으로 향하였습니다.


프랑스군의 무능함

아르덴 숲에 대규모 기갑부대가 진출하면서 여러 전차와 보병이 뒤섞이면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혼란이 왔습니다. 이렇게 혼란을 틈타 프랑스 공군의 폭격이 있다면 모두 전멸 할 수 있는 위기 였지만 프랑스군은 독일 기갑부대의 움직임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큰 전공을 세운 프랑스 가믈랭 장군은 오직 기존 전쟁 방식만을 생각하고 준비를 하였기 때문에 아르덴 숲 돌파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후방을 뚫려 버린 이후 에도 군대 편제가 폭격기와 전차 보병이 모두 따로 움직이고 있어 서로 협력하는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군사 통신 체계도 독일군은 개별 전차마다 무전기가 장착 되어 실시간 소통 하였지만 프랑스군은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사람이 직접 통신을 해야 할 정도로 후진적이었습니다.

 

독일 기갑부대 전격전과 프랑스군 붕괴

아르덴 숲을 빠져나온 직후, 구데리안이 지휘하는 기갑부대는 프랑스 군을 격파하고 뫼즈강 거점 도시인 스당 점령에 성공합니다. 독일 기갑부대는 개별 임무에 따라 뫼즈강 도하를 마치고 최종 목적지인 영불해협을 향하였습니다. 전차에 여분의 기름통을 달고 병사들은 각성제를 맞으면서 잠을 자지 않고 진격 하여 전차전의 천재 롬멜은 하루만에 48km을 진격 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사실상 프랑스군 오토바이 전령의 왕복 속도 보다 독일군의 전차가 더 빠른 속도로 진격하여 프랑스군 방어선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다이나모 작전 : 덩케르크의 기적

 

치열한 전투를 예상 했던 히틀러와 독일 수뇌부는 프랑스군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받으면서 혹시 패배 하는 척하면서 깊게 끌어들이는 함정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일군 스스로도 엄청난 성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연합군의 전략적인 후퇴인지 확인 하기 위해 선봉의 기갑부대들에게 속도를 늦추고 보병과 합류 하는 것을 지시 하였습니다. 마침 영불해협 근방의 아리스에서 영국군의 역습을 받아 롬멜의 제7기갑사단이 위기에 처하자 독일군은 스스로 진격을 멈추고 대기 하게 됩니다. 독일군이 스스로 공격을 멈춘 짧은 기간에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들은 이미 독일군에게 장악되고 덩케르크에 영국 육군의 주력 부대가 겨우 버티고 있던 상황에서 전멸 될 수 있는 위기에 상황 이었습니다.
영국 육군 30만은 변변한 퇴각 작전 없이 덩케르크에서 버티고 있던 상황에 영국 수상 처칠이 작전명 다이나모를 승인하면서 역사상 최대의 탈출 작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독일의 공격이 멈추어진 시간에 영국 본국에서 부터 군함은 물론이고 어선과 요트, 유람선들을 총동원하는 후퇴 작전을 통해 7일동안 30만이 넘는 인원이 해협을 건너 퇴각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전 성공을 계기로 영국은 본토를 방어 할 수 있는 전투력을 보존 할 수 있었고 히틀러는 영국군 섬멸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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