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육군 30만명의 덩케르크 탈출이 마무리 되고 나고 독일의 공격이 재개 되어 덩케르크 함락 및 해안 저지대 지역 전부가 독일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프랑스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솜 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독일군의 진격을 필사적으로 막아섰지만 마지막 희망이었던 영국 육군이 모두 후퇴 해 버렸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버틸 여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1940년 6월 14일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함락되면서 전쟁의 사실상 독일이 승리하였으며 새로 프랑스의 총리로 임명괸 ‘필리프 페텡’은 더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다고 판단 콩피에뉴에서 이루어진 독일과 정전협정을 맺습니다.
콩피에뉴 협정(1940.6.22)
나치 독일과 프랑스 제3공화국 관계자들에 의해 서명 된 조약으로 같은 해 6월 25일 자정 이후부터 효력이 발생하였습니다
프랑스 침공이 진행되는 가운데 프랑스 총리였던 필리프 페텡이 나치 독일에 먼저 휴전협정을 제의했고 제 1차 세계대전이 종전했던 장소인 콩피에뉴에서 조약이 체결 되었습니다. 이 협정에 따라 프랑스 북부는 독일이 통치하였고 프랑스 남부는 비시 프랑스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남은 영토는 휴양도시 비시를 수도로 재편 되었으며 필리프 페텡은 비시 프랑스의 국가원수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망명 정부 수립
페팅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수의 젊은 군인들이 죽고 다쳤기 때문에 저항 하기 보다는 후일을 도모라는 것이 프랑스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였지만 프랑스 제4기갑사단 사단장 ‘샤를 드골’ 장군은 끝까지 항전을 하였습니다. 실제 전투에서도 독일군을 강대로 선전하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콩피에뉴 협정이 조인 되자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 자유프랑스를 수립 하였습니다.
자유프랑스는 공식적인 프랑스 정불 인정받지 못했지만 해외 식민지들을 거점으로 투장을 이어나가며 독일과 비시 프랑스에 맞서게 됩니다.
영국의 결사 항전 의지
독일 나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련을 공격하여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고 게르만민족의 레벤스라움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광활한 영토를 빼앗기 위한 소련과의 치열한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영국의 항복이 필요하였습니다.
영국은 프랑스 원군으로 참전하여 후퇴 한 후 본토 방어에 집중을 하면서 독일은 영국 공격 방법에 대해 고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국은 바다을 지배하는 막강한 해군과 방대한 해외 식민지들에서 국력이 유지 되는 나라였습니다.
반면에 독일은 베르샤유 조약으로 인하여 해군의 규모가 너무 작았으며 이미 노르웨이 침공을 하면서 많은 전력이 손실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소련 침공에 집중하고자 영국에게 항복을 권유 하였으나 영국 처칠 수상은 항복 요구을 거절 하고 영국인들을 끝까지 항전 하도록 결집 시켰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
독일군은 상륙작전을 무리하게 진행 하기 보다는 공군을 활용하여 강경한 영국의 기선제압 하기로 하였습니다. 공군으로 본토 폭격을 충분히 다음 대규모 상륙작전을 하기로 한 독일은 7월 10일부터 영불 해협을 공격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영국 본토의 군수시설과 공군기지를 향한 독일 공군의 공격은 탄탄한 방공망과 신기술 레이더를 활용한 영국 공군에 의해 막혔습니다. 수차례 폭격에도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고 귀중한 항공기와 파일럿만 소모 되고 있던 히틀러는 영국 상륙 작전을 잠정 중단 하고 소련 침공을 준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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