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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솔론의 개혁 실패와 참주 독재 정치의 시작

by 최상민수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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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론의 아테네 정치, 사법, 경제 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계혁은 붕괴 직전 이었던 아테네의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는데 성공 합니다. 하지만 워낙 대대적인 개혁이었던지라 개정 요구와 해석 문의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솔론은 이러한 반발을 무마 하고자 정책과 성문법만 남기고 자신은 없어져야 새로운 정책이 정착 될 것이라 생각 하였고 자신의 정책을 10년간의 시행 기간을 설정 한 뒤 해외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솔론의 개혁 정책 한계


10년간의 해외 여행을 떠나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솔론은 자신이 전혀 예상 하지 못한 결과가 있었습니다. 각 계급별로 통합 되어 갈등 해소를 기대 하였으나 귀족들은 정치 참여 권리을 평민에게 기회를 준 것에 빈민들은 경제력에 따른 권리 설정이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들만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오히려 새로운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이용한 참주가 등장하여 1인 독재 정치가 시작 되려 하자 솔론은 참주 반대 운동을 펼치다가 결국 참주정이 들어서자 아테네를 완전히 떠나게 됩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갈등이 격화 되고 참주정이 들어섰기 때문에 실패 였지만 솔론의 개혁은 사회 모든 계층에게 평등하게 진행 하였으며 한 계급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자신의 권력을 강화 하지 않았습니다

무력으로 참주 정치가 시작 되다


솔론 이후 사회적 갈등을 이용하여 참주에 오른 사람은 빈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페이시스트라토스  였습니다. 솔론의 개혁 정책이 정착 하지 못하고 갈등이 격화 되면서 귀족으로 구성 된 평지당, 상인 중심의 해안당, 하층민의 산지당 3개의 정파가 생겨 나고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 하였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귀족 이었지만 하층민의 산지당의 대표로서 매력적인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여론을 주도 하였으며 자신의 사병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스스로 참주가 되었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능력 있고 개혁적인 참주 였지만 그 의 아들이 권력을 세습하여 통치 할 때 폭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후 아테네인들은 비록 한 명의 참주가 능력 있고 선정을 베푼다고 하여도 결국 파국을 맞이 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 하지 않은 체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세 번의 도전 끝에 종신 집권 하다


페이시스토라토가 참주의 자리에 올라 빈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이를 견제 하는 귀족과 상인들의 정치 연합으로 두 번이나 아테나에서 해외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는 페이시스토라토는 해외에서 10년간 광산을 운영 하여 군사 자금을 마련하고 이웃국가 테베와 아고스 군대를 끌어들어 침공하여 반대 정치파을 모두 물리 치고 죽는 날까지 20년 동안 아테네를 통치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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