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귀족들은 스파르타의 도움을 받아 참주 히피야스를 내쫓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아테네 내정 간섭이 시작 되어 아테네 시민들의 반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클레이스테네스는 스파르타를 쫓아 내는 동시에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아테네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기원전 508년 수석 아르콘으로 집권하게 됩니다.
부족 단위에서 행정구역 단위로 전환
클레이스테네스는 평민들의 지지로 집권하였고 공약을 지키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 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시행 것이 기존의 4개 부족을 다시 구성 하였습니다. 부족 자체를 해체를 해버려서 귀족의 특혜인 혈연을 최소화 하고자 하였습니다. 촌락 공동체를 100여개의 최소 단위로 ‘데모스’ 로 명명하였으며 해안, 내륙, 도시 3개 지역으로 나눴습니다. 이렇게 거주지 중심으로 10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으며 계층에 상관 없이 각각 50명씩 대표를 제비뽑기로 뽑아 500인 평의회를 구성 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평민들이 혈연에 의한 귀족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직접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생겨 났습니다.
참주 출현을 방지를 위한 도편 추방제
도편추방제는 참주가 다시 나타나 독재정치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 아테네인들이 클레이스테네스 시기에 도입 된 정책 입니다. 일 년에 한 번 도편추방제를 실시 할 건지 투표를 먼저 하고 가결이 되면 도기 조각에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 냈습니다. 도기에 제출된 표가 6000표가 넘으면 나라 밖으로 10년간 추방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편 추방제는 참주 방지의 기능 보다는 선동에 의한 정적 제거 수단으로 활용 됩니다. 대표적으로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군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가 도편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정적들이 추방을 당하자 부작용을 깨달아 결국 폐지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과 민주주의
솔론 부터 시작 된 사회적 개혁이 점차 진행 되어 본격적으로 민주정치가 아테네에 만개 된 것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입니다. 가장 낮은 계층인 테테스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전함으로 노병으로 참전하여 전투에 큰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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