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빌로니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이라고 평가 받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을 예전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명성을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아시리아와 전쟁 중에 아버지로 부터 군사 지휘권을 이어 받았으며 기원전 607년 자국 영토 내에 이집트 세력을 축출하는 임무를 수행 하였습니다.
무역의 중심지 이자 지중해로 나아가는 통로 레반트 지역에 이집트 세력이 차지 하고 있어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에 반드시 해결 해야 하는 문제 였습니다.
1차 바빌론 유수
기원전 605년 모든 병력을 집중하여 카르케미시를 총공격해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 뒤 이집트 군을 뒤쫓아가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후퇴 하게 됩니다. 네부카드네자르2세는 왕위에 올라 권력을 장악 한 후 기원전 599년 다시 레반트 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때 시리아와 가나안 지방을 하나 하나 점령 하였으며 유다 왕국을 공격 합니다. 유다 왕국은 충성을 맹세 한 속국 이었지만 이집트를 믿고 조공을 중단 하였습니다. 이집트는 국력이 약해져서 더이상 유다 왕국을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의 포위 공격에 유다 왕 여호야킴은 사살 되었고 새로운 왕 여호야긴과 3000명의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이를 ‘유배 되어 갇히다’라는 뜻의 한자어 유수를 붙여 1차 바빌론 유수라고 합니다
2차 바빌론 유수와 레반트 지역 제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다 왕국을 떠나면서 여호야긴 왕의 삼촌 시드키야를 허수아비 왕으로 임명합니다. 하지만 신바빌로니아 내부 혼란을 틈 타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에 기원전 587년 네부카드네자르는 다시 유다 왕국을 10년 만에 다시 포위 공격 하여 점령 하였습니다. 도망 친 시드키야를 사로 잡아 성경에 의하면 시드키야의 두 아들을 처형하고 두 눈을 파내고 그를 쇠사슬에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더불어 농부와 목축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2차 바빌로 유수가 발생 하였습니다.그히고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페니키아의 티레까지 멸망시키면서 레반트 지역 전역을 평정에 성공 하게 됩니다.
바빌론 거대 도시의 탄생
바빌로니아가 레반트지역을 모두 차지 하게 되면서 지중해 무역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건축과 선박에 이용 되는 최상급 레바논 삼나무를 독점하여 엄청난 양의 삼나무를 벌목하여 바빌론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레반테 지역의 경제적 이익과 건축 자재를 해당 지역에 활용하지 않고 모두 수도 바빌론을 개발 하는데 역량을 집중 하였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도시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상징 하도록 하였습니다. 유대인을 포함 한 대규모의 전쟁 포로를 바빌론의 건설 노동력으로 활용 하여 거대한 도시 건축물이 들어서고 그 결과 엄청난 부의 창출과 새로운 문화가 발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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