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1세 영토 확장 및 통치 시스템의 안정 그리고 문화적 업적을 통해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치명적인 실패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두 번에 걸친 그리스 원정 실패 입니다. 다리우스 1세는 마라톤 패전 소식을 듣고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세번째 그리스 원정을 계획하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그리스를 점령하기 위하여 군함과 군대를 준비하는데 3년을 소비 하였는데 기원전 489년 부터 수년간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일대에서 반반란이 일어나 원정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리우스 1세는 건강이 나빠졌고 기원전 486년 사망 하게 됩니다
그리스의 원정 실패와 제국의 쇠락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크세르크스 1세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과업인 그리스 정복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복수 뿐만 아니라 제국에 군림하는 새로운 왕으로서 권위를 확고하게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기원전 480년 최대 30만명으로 추정 되는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침공에 나선 크세르크세스 1세는 영화 300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승리하고 아테네까지 진격하여 도시를 초토화 시킵니다. 그러나 이후 살라미스 해전의 패배와 바빌론빈란이 결정타가 되어 페르시아로 후퇴 하게 됩니다. 이 전쟁의 여파로 페르시아는 에개 해의 패권을 그리스에게 넘겨 줄 수 밖에 없었으며 아테네는 에게 해를 완전히 제페 하여 해양 제국이 되었습니다. 제국을 성장한 아테네는 적극적으로 군사 해외 원정을 단행 할 정도로 국력이 강해 졌으며 그 반대로 페르시아는 약해졌습니다.
그리스 원정 실패 이후 국력이 약해 졌지만 크세르크스 1세는 말년에 사치와 주색에 빠집니다. 이 때 아파다나와 백주궁전, 보물창고 등이 세워지게 됩니다. 약해진 국력에 여러 화려한 건축물을 세우면서 세금이 늘어나고 자신의 아버지와 다르게 관용없이 이민족들을 강경하게 통치 하여 제국 내 불만이 높았습니다. 결국 기원전 465년 왕실 경호대장 아르타바누스가 쿠테타를 일으켜 암살 당하면서 그의 통치는 끝나게 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
크세르크세스 1세 사후 기원전 474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왕으로 옹립 되었습니다. 그는 부왕을 살해한 아르타바누스에 의해 옹립된 후 한동안 꼭두각시 왕 노릇을 하였지만 기회를 엿봐 아르타바누스를 제거 하였으며 각지의 반란을 진압 하여 내부 단속을 하였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리스 국가들과 군사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를 이간질 하면서 견제 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스파르타에 자금을 지원하여 아테네를 견제 하도록 하였으며 펠로폰네스전쟁이 한창 일 때 아테와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또한 그는 다시 이민족에 대해 관용의 정치를 하여 제국 내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침공
기원전 424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사망한 이후 제국은 가문 별로 파벌이 생겨 왕위 찬탈이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여러 왕을 거쳐 기원전 336년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가 즉위 하였지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전체를 통합 한 후 페르시아에 침공하여 파죽 지세로 페르시아 영토를 무너뜨렸습니다. 전쟁 내내 도망만 다니던 다리우스 3세는 피난길에 암살을 당하면서 페르시아 왕조는 종말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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