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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2차 세계대전 독일 : 독소전쟁의 시작 바르바로사 작전

by 최상민수 2024.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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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피의 독재자 스탈린이 독일은 절대 소련 침공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독소불가침 조약을 철저하게 준수 하였지만 독일군은 소련 침공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은  전체 군을 3개의 집단군으로 나누고 각각의 집단군에 목표를 설정 하고 빠르게 진격 하기로 계획 하였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

1941년 6월 22일 총 병력 305만에 달하는 독일군이 소련 국경을 넘으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군사작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상징도시 레닌그라드, 경제의 중심지 키예프, 스탈린이 있는 현재 수도 모스크바를 목표로 세 방향으로 진군을 시작한 이 작전은 신성로마제국의 전설적인 황제 프리디히 바르바로사의 이름을 딴 이 작전은 게르만 민족의 생활영역인 레벤스라움을 건설하고 풍부한 지하 자원을 얻기 위한 거대한 군사작전 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예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 할 당시 모스크바 도시 하나만을 노렸다가 결국 실패 한 것을 참고 하여 더욱 큰 규모의 군사작전을 계획 하였습니다  

 

개전 초기 독일의 일방적인 승리

소련군은 대숙청의 여파로 독일군의 공격에 변변한 저항 조차 하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 버렸으며 항공기들은 전쟁 시작과 동시 기습 공격에 비행장에서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개전 초기 3개 집단군은 승리를 지속하였으며 특히 모스크바를 목표로 한 중부 집단군은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불과 2주만에 소련의 서부 거점도시였던 민스크를 가볍게 점령 하고 한 달 뒤 스몰렌스크 전투까지 승리하여 소련군은 수십개 사단이 와해 되고 120만명의 사상자와 70만명 병력이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됩니다.  또한 북부 집단군은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발트해 연안을 빠르게 장악 하였으며 소련에게 복수하기 위해 참전한 핀란드까지 공격에 참여 하여 레닌그라드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키예프 공방전

남부 집단군의 목표 도시 키예프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돈바스 공업지대는 소련 경제의 중심지 였습니다. 더불어 키예프 남쪽의  카프카스 산맥에는 핵심 석유지대가 있어 소련 입장에도 절대로 빼앗겨서는 되지 않은 지역 이었습니다. 소련군은 독일의 남부 집단군의 공격에 3500여대의 전차를 동원한 물량으로 1차 방어를 한 후에 키예프 인근 주민들까지 총동원하여 방어전투에 투입하여 독일군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게 막아 키예프를 지키는 데 총력을 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