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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소련의 탄생: 1차 세계대전 발발과 2월 혁명

by 최상민수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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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도 부터 1914년 까지 러시아 정부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은 시위와 파업을 했으며 점점 규모가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사회주의당 내부 에서도 온건적 혁명을 주장했던 멘셰비키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점점 잃어가고 엄격한 규율과 폭력적인 혁명을 주장 했던 레닌의 볼셰비키가 지지세를 얻기 시작 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 : 중앙 정부 신뢰 추락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이 발발 하자 국가적인 위기를 느낀 전 국민들이 결집 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적 생존이 걸린 위기 상황에서 국내적 여러 갈등들으 빠르게 사라져 파업의 열기도 식어 갔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전쟁에서 초반에는 승기를 잡았지만 계속 패배를 이어지면서 군대의 사기가 심각하게  꺾이게 되었고 정부는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였습니다. 중앙 정부의 부재 속에 지방 자치 기구인 '젬스트보'와 그 연합체인 도시 연합이 전쟁 지원 활동을 나서게 되고 이러한 자발적인 자체 조직의 활동은 훗날 혁명의 시민 정신의 기초가 됩니다
 

라스푸틴과 황실의 몰락
 

1915년 8월부터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직접 러시아 군대의 총사령관직에 오릅니다. 차르 황제 일가는 라스푸틴이라는 수도자에게 나라 운영을 맡겨 많은 문제점을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차르가 수도를 비운 사이에 황후인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가 국가 정책에 개입하였으며 라스푸틴과 성적인 추문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민중들에게 떠도는 지저분한 소문은 황실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엄청난 위기감을 안겨 주었고 잠잠 했던 파업이 다시 시작 되게 됩니다. 
파업이 점점 확산 되는 분위기를 맞아 폭력 혁명을 주장 했던 볼셰비키는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들고 전쟁을 반대 하는 전쟁 혁명전쟁을 일으키자는 호소를 하기 시작 합니다. 호전적으로 변하던 노동자들은 볼셰비키를 지지 하게 되고 멘셰비키의 당원들도 볼셰비키로 전향 하기 시작 했습니다. 상황이 심각 하게 여긴 귀족들이 차르의 권위를 위하여 라스푸틴을 살해 하였지만 이미 민심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상태였습니다.

2월 혁명

 

1차 세계대전과 교통망의 붕괴는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식량을 고갈시켰습니다. 식량공급의 중단 이후 사람들은 빵 한쪽도 사 먹을 수 없었고 빵을 요구하는 시위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 되었습니다. 빵을 요구하던 시위가 시작 되어 정치적인 데모로 변화 하고 전쟁의 종식과 가족의 무사생환을 요구하는 여성들도 시위에 참여하게 되어 굶주리는 시민과 평범한 시민들이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됩니다. 차르는 이에 대해 경찰과 군인을 투입시켜 시위대를 무력 진압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1917년 2월 17일 군중들에 발포를 명령 받은 군대가 경찰들을 향해 발포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병사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살해하라고 명령한 지휘관을 살해했고 수도의 기차역, 정부기관, 감옥을 점령하고 정치운동가들을 석방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