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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제국의 첫 번째 전쟁

by 최상민수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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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계인들의 반란을 6년만에 평정을 하고 이번 반란이 제국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 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그리스 본토 국가들을 복속 시키지 않으면 제국 전체의 안정에 불안이 된다고 우려 하여 본격적인 침략 전쟁을 시작 하게 됩니다

페르시아의 첫 번째 침공

기원전 492년 봄 다리우스 1세는 총 20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사위 마르도니우스에게 그리스를 침공 하도록 합니다. 마르도니우스는 이오니아 반란 때 페르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났던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우선 점령하고 그리스 반도로 남하 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의 계획 대로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군사적으로 점령 하였으나 불행히도 그리스 반도 북부를 향하던 해상함대는 폭풍우를 만나  300척의 배가 난파 되고 2만 명의 병사를 잃었으며 총사령관 마르도니우스는 마케도니아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두 가지 악재로 인하여 페르시아 원정군은 그리스 본토에 가지 않고 후퇴를 하게 됩니다.

복종의 흙과 물을 요구 하다

 

다리우스 1세는 첫 번째 침공 이후 그리스 여러 도시 국가에게 복종의 의미로 흙과 물을 요구 하였습니다. 도시 국가 단 2개의 도시 국가만 제외 하고 모두 흙과 물을 보내 왔습니다. 페르시아 군대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페르시아가 반란을 일으켰던 그리스계 도시들에게 종교와 관습을 인정 해 주면서 회유를 한 것이 크게 작용 하였습니다.

 

영화 300의 장면

 

공동의 적에 대항에 연대 하다

 

다른 그리스 국가들과 다르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에게 흙과 물을 보내지 않고 사신을 처형 하는 것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에게 복종 하면 망명해 있던 참주 히피아스가 복귀하여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다시 끝날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복형제를 죽이고 왕이 된 레오니다스는 페르시아로 부터 독립 된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신을 우물 안으로 던져버리고 저항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 때 부터 서로 경쟁하던 그리스 도시 국가는 페르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연대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