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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두 번째 전쟁

by 최상민수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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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1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자신의 대사를 처형 한 다음 해인 기원전 490년 제2차 원정군을 파병을 합니다. 병력은 총 2만 5천명에 함대 600척을 동원 하여 출진 하였으며 1차 침공 과는 다르게 2차 침공 에서는 에게해를 가로 질러 함대를 이용하여 진격을 하였습니다. 전쟁 목표는 이오니아 반란을 군사적 지원을 하였던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를 멸망 시키고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국가들에게 항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아테네 나가서 맞서 싸우기로 하다

 


낙소스 섬을 시작으로 하나씩 주변 섬을 점령한 페르시아군은 에레트리아를 포위 공격을 시작 하였습니다. 공격이 시작 한지 단 6일만에 페르시아에 포섭 된 귀족들이 성문을 열어 페르시아군은 손쉽게 입성하여 모든 신전과 성역을 불태우고 시민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실패를 첩보를 통해 알게 된 아테네는 성안에서 방어가 아니라 군대를 이끌고 나가 맞서 싸우는 것으로 결정 하였습니다.
최고 사령관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와 전투를 해본 경험자로서 무장 가능한 모든 시민들에게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중무장 보병을 중심으로 9천명의 군대를 편성 하여 마라톤 평야에 상륙한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출동 하였습니다. 스파르타에게도 원군을 요청 하였지만 종교 제전을 하는 중이기에 군대가 전투 이전에 도착 할 수가 없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군대 특징


페르시아는 여러 지방을 정복하고 해당 지역에서 군대를 강제 징병하는 체제 였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의 군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고대의 전투는 병력 숫자가 승패에 절대적으로 좌우 했기에 양이 중요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의 방패나 갑옷은 가벼운 나무가지와 천 그리고 가죽으로 제작 되어 비용을 최소화 하였습니다. 손실 된 병력은 정복지에서 충당 되었지만 핵심 전력인 페르시아 본토 병사는 충원이 불가능하기에 페르시아인들은 주로 활이나 투척 창을 활용하는 원거리 공격을 담당 하였습니다.  가장 공력이 강한 병종은 활과 투창으로 무장한 궁기병으로 기동력과 원거리 능력으로 적을 교란 시키는데 능숙 하였습니다.
페르시아군의 전투 방식은 먼저 원거리에서 활과 투창으로 적에게 피해와 혼란을 주고 방패병, 창병, 도끼병이 돌격을 하고 궁기병이 적의 측면과 후방을 돌아 다니면서 틈을 만들고 결정적인 승리의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아테네 군의 특징

 

페르시아가 경무장 보병이었다면 정 반대로 그리군은 중무장 보병이 핵심이었습니다. 방패 이름인 호플론을 이름을 따서 호플리테스라고 불린 병사들은 당시 값비싼 청동 제품으로 중무장을 해야 했기에 일정 수준의 재산이 잇는 시민만이 병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가슴 보호대, 정강이 보호대, 투구, 방패, 창 모든 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총 34킬로그램에 달하였습니다. 그리스 군은 개별 무장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팔랑크스 대형을 만들어서 싸웠습니다. 팔랑크스 대형은 중무장한 보병이 간격 약 90센티미터를 유지하면서 직사각형 모양으로 서 있고 창과 방패를 활용하여 바로 앞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과 수비 하기 좋은 대형 이지만 측후방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