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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마라톤 평원 전투

by 최상민수 2024.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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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원정군은 에네트리아를 점령 한 이후 휴식을 취한 후 아테네를 정벌하기 위해 아티카 반도로 향합니다. 아테네에서 쫓겨난 참주 히피야스는 아테네 북동쪽 약 35km 떨어진 마라톤 평야로 직접 안내 하는데 지형상 해안선이 길고 완만하여 대규모 함대의 주둔이 가능 하였습니다.

페르시아 군대를 나누어 동시에 공격 하고자 하다


페르시아 군대는 2만 5천명 모두 마라톤 평야에 상륙 하지 않고 기병을 비롯한 정예 병사 1만명은 아테네로 바로 진격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그리스의 중장보병 9천명과 나머지 1만 5천명이 싸우게 되어 숫자의 이점이 크게 감소 하였습니다. 특히 팔랑크스 대형의 최대 약점인 측면과 후면을 공격 할 수 있는 기병을 모두 아테네로 보내 마라톤 전투에서 활용 하지 않은 점이 가장 잘못 된 판단 이었습니다.

 

아테네 중무장 보병으로 포위 공격 하다

 

아테네 최고 사령관 밀티아데스는 팔랑크스 대형을 변형 하여 페르시아 군대를 공격 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군의 주요 부대가 대형 중앙에 위치 하고 있어 양쪽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포위 공격을 하고자 중간 부분의 대형을 길고 앏지만 반대로 양쪽 날개 부분은 두껍게 배치 하였습니다. 아테네 군은 상대의 주요 공격 무기인 활의 공격이 닿는 근접 지역 부터는 방패를 들고 빠르게 돌격 하여서 원거리 공격에 아무런 피해 없이 페르시아 방패 부대와 전투를 시작 하였습니다.

 

아테네 일방적인 전투로 페르시아군을 물리치다

원거리 공격에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페르시아군은 갑작스럽게 돌격하여 매우 당황한 반면 주변 국가의 전투를 통해 전투 경험이 풍부한 아테네 중무장 보병은 근접전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갑옷은 천과 가죽으로 되어 있고 방패도 화살 정도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도가 약한 무장을 한 페르시아군은 아테군의 강력한 창과 방패에 제대로 된 저항 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테네군의 양쪽 대형이 순식간에 페르시아 중앙 부대를 포위하고 공격을 당황하고 후퇴 하기 급급 하였습니디. 이번 전투로 인하여 페르시아 군은 6,400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반면 아테네군은 192명만 사망 하여 아테네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육상 종목 마라톤 기원


마라톤 평야의 전투 승리에 대한 소식을 알리기 위해 페이디데스라는 전령이 쉬지 않고 달려 소식을 알린 후 탈진 해 숨졌고 1896년 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생기는 일화가 생기는 것이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마라톤 전투 였습니다.

 

전력으로 달려 아테네를 구하다

마라톤 전투가 끝난 후 아테네 군은 승리를 자축하는 것이 아니라 중무장을 한 체로 전력으로 달려 아테네로 향해야 했습니다. 페르시아 정예 병사 1만명이 아테네로 향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약30km를 3시간 동안 달려 늦지 않게 도착을 합니다. 중무장을 한 보병이 함선 보다 빨리 아테네에 도착하여 전투를 준비 하는 모습을 본 페르시아 정예병은 전쟁을 포기 하고 후퇴를 하여 다리우스 1세의 아테네 원정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