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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3차 전쟁 : 살라미스 해전

by 최상민수 202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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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레오디나스 왕을 협곡에서 물리친 페르시아 대군은 곧바로 아테네로 행군을 하면서 곳곳의 도시를 하나 하나 파괴를 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크세르크스가 대군을 이끌고 아테네에 도착을 하니 시민들은 한 명도 없이 비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싸우기 위해 아테네를 떠나다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가 패배로 끝나고 나서 아테네 최고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모두 대피 할 것을 설득하였습니다. 좀 더 승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시민들은 배에 타서 바다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시민들은 10년전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떠올리면서 고향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성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자 시민들의 대피를 위해 종교를 활용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델포이 사제에게 신탁을 받아 오는데 사제는 "세계의 끝까지 도망 칠 만큼 도망쳐라" "오직 나무로 만든 성에만 의지 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설득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피를 하였으며  끝까지 대피를 거부하는 높은 계급의 시민들은 마라톤 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의 아들 키몬이 연설을 하여 결국 모든 시민들이 아테네를 떠나게 됩니다.
 

 

좁은 해협으로 적을 유인하다 
 

테미스토텔레스는 페르시아와의 해상 대전을 위해 군선 200척을 미리 준비 하고 오래 시간 전투을 연구 하였습니다.
그는 폭이 좁아 큰 배가 진입하기 어려운 살라미스 해협으로 페르시아 대군을 끌어 들이 수만 있다면 반드시 승리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페르시아의 큰 배들은 이 지역의 거센 물살과 강한 바람에 전혀 모르고 있기에 테미스토텔레스의 생각은 근거가 충분 하였습니다. 테미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전략을 실혀 시키기 위하여 이오니아 출신으로 페르시아 언어를 할 수 있는 자신의 시종을 크세르크세스에게 보내 그리스 연합군은 분열 되었고 병력을 나누어야 한다는 거짓 정보를 전달 하게 됩니다. 
 

 

크세르크세스의 방심

크세르크세스는 대규모 해전을 피하고 아티카 반도에서 지상군의 압도적인 병력으로 도시를 하나씩 각개 격파 하자는 부하의 제안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인들은 배신과 분열의 족속이라 생각 하고 있었고 테르모필레협곡에서도 현지인의 배신으로 지형의 어려움을 돌파 하였기에 테미스토텔레스의 거짓 정보를 믿고 군대를 나누어서 한꺼번에 공격 하고자 하였습니다. 

 

세계 4대 해전 살라미스 해전, 좁은 해협으로 끌어 들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함선 수는 1207척이었습니다. 페니키아, 이집트, 이오니아 지방과 에게 해 섬으로부터 온 배들이었죠. 반면 그리스 연합국의 배는 387척 이었습니다.  테미스토텔레스의 거짓 정보에 속아 200척의 배를 파견 보냈다고 하여도 2배가 훨씬 넘는 함선의 숫자의 차이가 났습니다.
그리스 연합 합대는 일부 함대를 이용하여 도망 치는 것 처럼 연기를 하여 살라미스 해협 깊숙이 페르시아 함대를 끌어 들였고 강한 바람이 불자 일제히 공격을 하였습니다. 아테네의 삼단 갤리선은 페르시아 함대의 배보다 작았지만 더 무겁고 낮게 설계 되어 바암이나 조류의 영향을 적게 받았습니다.  좁은 해협에서 강한 바람에 페르시아 배는 통제 불능이었지만 아테네 배는 노를 열심히 저아 단단한 충각을 이용하여 페르시아 배를 파괴 하였습니다. 파괴 되지 않은 배는 그리스 중장보병들이 올라 타서 경무장 페르시아 군을 일방적으로 공격하여 무찔렀습니다.
좁은 해협의 함정에 빠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페르시아 군이 후퇴 하여고 하였으나 엄청난 수의 함대가 계속 좁은 해협으로 진격하고 있어 서로 뒤엉켜서 부서지거나 침몰 하였습니다. 순식간에 200척 이상의 배가 전투 불능이 된 페르시아 함대는 완전히 사기가 떨어져 후퇴를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