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는 소수의 귀족이나 왕이 아니라 자유로운 남자 성인이 직접 통치 하는 민주정 이었습니다. 이는 인민을 뜻하는 ‘demos’와 힘이나 지배를 뜻하는 ’kratia’의 합성어로 아테네인들은 민주정을 ‘인민에 의한 지배’ 를 뜻하였습니다
여기서 ‘인민’ 이란 상하 위계 없이 능동적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는데요 사실 이 인민에 여자, 노예, 외국인은 포함 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
아테네 전체 인구에서 상당 부분 비중을 차지 하는 거류 외국인은 교역을 통해 왕래 하다가 정착하거나, 시민권이 생긴 이후 이주 해 온 경우 마지막으로 페르시아 전쟁 이후 전쟁 난민 이유는 다양한 부류가 섞여 있었습니다. 외국인은 자유인으로서 신체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시민권은 가지지 못 하였습니다. 시민권은 크게 참정권과 군대 의무를 포함 하였는데 외국인은 재판권도 허용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쟁이 필요 할 때 스스로 방어 할 수 없어 큰 제약 이었습니다
노예 노동에 기반한 참여 정치
노예는 사회적 지위는 외국인 보다도 낮았습니다. 노예는 스스로 돈을 모아 자유를 직접 사거나 주인의 호의로 해방이 되면 외국인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노예는 농업, 광업, 제조업, 가사 노동을 담당 하였으며 대체로 노예를 거느린 아테네 시민권자가 정치나 공적인 사항에 많이 관여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는 노예 노동에 기반하여 운영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적국인 페르시아 키루스 2세가 노예를 금지 한 것과 대비 되었습니다.
여성 차별과 동성애
고대 아테네는 철저히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며 여성은 투표권은 물론이고 민회를 참석하거나 공직을 맡을 수 없었습니다. 여성은 남편 혹은 친척 남성의 보호와 통제 아래에 있어야 혼자 집을 나설 수 없었습니다. 집에 격리 되어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전부 였습니다. 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것도 성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불가능 하였습니다. 이 때 당시에는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대상이 아니 었기 때문에 평등한 대상인 같은 남성 끼리라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어린 소년과 성인 남성 간의 동성애가 많이 일어 났습니다.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건축 : 페리클레스의 정치력 (0) | 2024.03.24 |
---|---|
아테네 제국의 탄생 : 델로스 동맹의 변질 (0) | 2024.03.20 |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 델로스 동맹 결성 (0) | 2024.03.18 |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3차 전쟁 : 살라미스 해전 (0) | 2024.03.17 |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3차 전쟁 : 테르모필레 전투 (0) | 2024.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