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 후 양국의 합의로 30년 휴전이 이루어진 이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순조롭게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평화 조약이 맺어진 5년 뒤인 기원전 441년전 델로스 동맹국인 사모스와 밀레토스간에 분쟁이 일어 나면서 다시 한 번 동맹국들의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밀레토스는 아테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스파르타의 참전을 요청 하였지만 스파르타는 참전을 거부 하고 평화 협정을 지키는 것을 선택 하였습니다.
에피담노스 분쟁으로 인한 전쟁 발발
사모스 분쟁에서는 양 국이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를 지켰지만 그리스 변방 에피담노스을 둘러싼 분쟁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스파르타 핵심 동맹국인 코린토스는 아테네에 대항하여 유일하게 함대 구성을 할 수 있는 국가로서 분쟁을 통해 아테네에게 군사적인 압박을 받자 적극적으로 스파르타의 참전을 요구 하였습니다. 코린토스는 소극적으로 방어만 할 경우 그리스 전체 패권은 아테네에게 넘어 갈 것이라고 스파르타를 강력하게 설득 하였으며 결국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전쟁을 결심 하게 됩니다.기원전 431년 스파르타왕 아르키다모스가 2만 5천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국군을 이끌고 아테네로 향하게 되면서 이른바 아르키다모스 전쟁이 시작 됩니다.
아테네 페리클레스의 전쟁 전략
아테네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보다 경제력도 앞서고 동맹국 규모도 더 컸으며 튼튼한 성벽이 있어 전쟁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스파르타 군대가 아테네로 진격해오자 성벽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후 수비만 하였습니다. 강력한 함대를 바탕으로 식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면서 버티고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통해 펠로폰네소스 동맹국을 공격 하여 스파르타를 괴롭혔습니다. 초반에는 페리클레스의 전략에 따라 성공적으로 방어를 하여 스파르타의 군대는 주변 약탈만 하다가 돌아 갈 수 없었지만 방어 성 내부에 전염병이 돌면서 인구의 30%가 사망하고 페리클레스도 전염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아테네 공격 전환과 니키아스 평화 조약
기원전 428년 아테네의 인구 감소로 인한 사기 저하 및 군사적 능력이 약해지자 델로스 동맹국 내에서 반란이 일어 나게 됩니다. 미틸리네는 섬에 방어벽을 쌓고 해군력을 증강 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동맹국의 이탈을 두려워한 아테네는 반란을 신속하게 제압하고 스파르타와 전쟁 전략을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 하게 됩니다. 아테네는 병력을 파견 하여 펠로폰네소스 반도 끝 필로스 곶에 성벽을 쌓고 전진 기지로 삼았습니다. 전투 끝에 스파르타 최상위 계급을 포로로 삼았습니다. 포로를 인질 삼아 스파르타의 공격을 막고 펠로폰네소스 동맹국의 공격에 집중 하여 전쟁의 승기를 잡았으나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해상 교역의 핵심 도시 암피폴리스를 점령하면서 전쟁은 다시 스파르타 우세로 바뀌게 됩니다. 식량 수급과 다른 동맹국 이탈을 방지 하기 위해 아테네는 암피폴리스를 되찾기 위해 공격 하는데 이 전투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핵심 지도자가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양국에서 온건파가 정권을 잡고 아테네의 지도자 니키아스가 평화 조약을 주도하여 50년간 평화 조약이 체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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