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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스페인 제국의 약점과 몰락 원인

by 최상민수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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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국가 탄생을 이끈 이세벨과 페르난도 부부 이자 공동왕인 두 사람은 제국을 개창한 존경 받는 영웅이지만 사실상 국가 파탄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는 두 가지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상반 된 평가를 받게 되는 큰 원인은 두 가지로 꼽힙니다.

알함브라 칙령

카스티야와 아라곤 두 왕의 결혼으로 1479년 하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의 출신국인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문화도 많이 다르고 법도 달랐습니다.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이슬람 세력과 끊임 없이 싸워 왔고 가톨릭을 강력하게 신봉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가톨릭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 내기 위해 벌인 일련의 전쟁을 ‘레콩키스타’ 라고 부르며 국가의 최우선 정책으로 하였으며 그러한 전쟁 분위기 속에 종교적으로 매우 보수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한 가톨릭 신앙 속에서 스페인 사회는 15세기 후반이 되자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이교도들에 대한 배척 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당시 스페인 인구의 6.5%를 차지하던 유대인은 각종 금융과 무역업에 종사 하면서 많은 부를 축적 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교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공동왕은 1492년 알함브라 칙령을 내려 스페인 내 유대인을 모두 추방 하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를 통해 26만명의 유대인이 재신을 몰수당하고 쫓겨 나가버리는데 이는 경제 엘리트 집단을 모두 상실 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종교재판소 설립

 

지나친 종교 중심적인 정책으로 알함브라 칙령과 더불어 1480년 종교재판소를 설립 하였고 가톨릭을 믿지 않는 이단에 대해서 사법권을 행사 하도록 하였습니다. 국가와 종교의 결속을 위하여 설립 하였지만 나중에는 종교 재판소와 가톨릭교회의 힘이 너무 비대 하게 되고 스페인은 종교 근본주의적인 국가로 변질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패쇄적인 국가가 되어 버린 스페인은 16세기에 이르러 유럽 다른 국가 들이 과학 발전에 크게 뒤처지게 됩니다. 네덜란드는 개신교로서 유대인 덕에 산업이 발전하고 선진화 된 지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어 국가 발전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개신교도의 이단적 지식이라며 과학지식을 거부 하였고 700권이 넘는 과학서적을 금지 하였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 종교재판소에서 가혹한 처벌을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 과학 발전은 멈추고 개신교 인 영국과 네덜란드에 추월 당하게 됩니다.  

종교 재판으로 인한 화형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결혼 동맹

이사벨이 죽고 혼자서 통치하게 된 페르난도 2세는 아직 신생국 스페인의 왕으로서 입접국 프랑스의 위협에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을 대비학 위해서 페르난도 2세는 당시 유럽 내 가장 강력한 합스부르크 가문과 연합 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연합을 위해서 결혼 동맹을 맺게 되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예상 하지 못하였던 이변이 발생하게 됩니다. 페르난도 2세가 죽고 난 이후 스페인 출신이 아니고 스페인어도 모르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5세가 1517년 스페인 왕위를 이어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합스부르크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도 배출하고 있었는데 카를 5세가 스페인 왕위 뿐만 아니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까지 물려 받아 카를 5세는 단숨에 유럽의 거대한  제국의 운영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카를 5세는 유럽 가톨릭을 지키는 수호자를 자청 하였습니다. 카를 5세는 유럽 내 이교도와 전쟁을 끊임 없이 수행 하였으며 이에 필요한 엄청난 전쟁 자금을 스페인 국가 재정을 활용 하면서 결과적으로 스페인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