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쿠테타로 왕위에 오른 다리우스 1세는 제국 전역의 내전을 진압하고 기원전 513년 대규모 원정을 나서게 됩니다. 첫 전투 대상은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대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스키타이족 이었습니다.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7세기에 서아시아로 이주 해 와서 페르시아의 전신 메디아 왕국을 잠시 지배 하였으며 아시리아 수도을 약탈하여 심각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리우스 1세가 반란을 막는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페르시아 제국 전반에 약탈을 해서 큰 피해가 나자 대규모 원정을 결정 하였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트라키아와 다뉴브 강을 건너 흑해 부근 까지 스키타이족을 공격 해 들어 갔습니다.
스키타이족에 패배한 다리우스 1세
초원 지역 넓게 분포 된 스키타이족은 페르시아와 전쟁을 회피 하면서 주변 지역의 식량과 우물을 철저히 파괴 하였습니다. 페르시아 대군은 뚜렷한 전투 없이 점차 질병과 배고픔에 지쳐 갔으며 다리우스 1세는 후퇴를 결정 하게 됩니다. 퇴각하는 페르시아 대군을 게릴라 공격을 통해 큰 피해를 준 스키타이는 기원전 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란계 유목민 사르마티아인에게 정복 당하기 전까지 그리스와 무역을 하면서 번영을 누렸습니다.
정복 전쟁으로 인한 페르시아 제국 확대
스키타이족 정벌은 비록 실패 하였지만 원정으로 계기로 서쪽의 그리스 북부를 진출 하게 된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북부 트라키아와 에게 해의 많은 섬을 점령 하였습니다. 이후 마케도니아의 항복까지 받아 낸 다리우스 1세는 동쪽으로 진출 하여 북인도의 펀자브 지방을 정벌 하면서 국경을 인더스 강 유역까지 확장 시켰습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아프리카 지역의 리비아 지역의 일부와 아랄해까 지 영토를 넓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까지 이어지는 대 제국이 만들어 졌습니다.
왕의 지방 통제 강화
다리우스는 반란 진압과 외부 정벌을 계속 해 나가면서 동시에 내치에도 힘썼습니다.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 된 제국인 만큼 내부의 안정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 하였으며 영토가 넓어지고 인구가 늘어나자 행정조직을 개편 합니다. 선대 왕 키루스 2세는 샤트라프 라는 각 지역의 총독을 파견하여 통치의 모든 권한을 가지게 하였으며 해당 주민의 고유의 종교와 관습을 존중 하도록 하였습니다. 키루스 2세는 군사와 세금의 의무를 다 하는 사트라프에게는 모든 권한을 부여 하였지만 다리우스 1세는 반란을 우려 하여 행정권과 사법권만 사트라프에게 허락 하였습니다. 또한 세금을 관리하는 재무관과 군 지휘권을 사령관을 따로 파견 하였으며 ‘왕의 귀; 이라고 부르는 감찰관을 파견 하여 지역의 사트라프와 재무관, 사령관을 감시 하도록 하였습니다.
왕의 길을 통한 교통 혁명
지방 행정을 통제 한 후 다리우스 1세는 수사에서 사르디스까지 총 2700킬로미터의 왕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왕의 길 곳곳에 초소와 숙소를 설치 하여 상인과 파발을 쉬어 갈 수 있게 하여 기존 석 달 이상 걸리는 거리가 말을 타고 밤새 달리면 일주일만에 갈 수 있는 교통과 통신의 혁명을 이루어 냈습니다. 왕의 길이 만들어 진후 제국 곳곳에 중요한 메시지가 빠르게 전달 되었으며 지역간에 교류가 활발해 졌습니다.
화폐 경제를 통한 경제 성장
다리우스 1세는 키루스 2세가 정복한 리디아의 화폐문화를 받아들여 시글로스라는 은화와 다릭이라는 금화를 발행 하였습니다. 화폐 경제가 만들어 지면서 초기 형태의 은행이 등장 하였으며 필수품과 사치품이 제국 내에서 유통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폐의 사용으로 세금 징수가 용이 해져서 국가 재정은 점점 부유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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